사회당에 올라온 오창엽님의 글입니다.
글을 상당히 잘 쓰시는 분인 것 같습니다.
좌파본색 : 5. 복기 & 중앙위원회
지금까지 당 운영에 있어 집행단위와 관련한 비판은 진행했고 의결단위에 대한 이야기만 하면 마무리다. 창표가 복기라는 표현을 써서 고마웠다. 지금까지 좌파본색은 내 나름의 복기復棋/復碁였다.
바둑을 두고 나서 특히 상수와 접바둑을 두고 나서 반드시 복기를 해야만 기력이 향상된다. 이미 둔 바둑을 수순에 따라 다시 놓아보다가 중요한 대목에서 자신이 선택한 길과 가지 않은 길을 또 상대방의 선택을 함께 분석해보면 많은 것을 얻게 된다. 복기는 과거에 대한 비판을 통해 다음 대국에서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공부인 것이다. 사회당에서 잘했던 것을 진보신당에서 더 잘하기 위해, 사회당에서 잘못했던 것을 좌파당 창당과정과 운영에서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
집행과 의결의 분리
이형진 전 중앙위의장과 엄균용 현 중앙위의장을 염두에 둔 글이다. 청년진보당-사회당에서 중앙위원을 한번이라도 해본 사람이 오백 명은 될 텐데 그 동지들의 고생을 기억하며 이런 이야기가 앞으로 진보신당과 좌파당에서의 활동에 도움이 되길 희망한다.
중앙위원회는 실질적으로 당내 최고의사결정 기구다. 최종결정은 당 대회에서 내리더라도 대부분의 단일안건을 상정하는 건 중앙위원회다. 청년진보당 시절 중앙위 회의를 당대표가 진행했다. 상집과 중집의 회의 주관자인 대표가 중앙위를 진행했고 안건지도 중앙당에서 만들었으니 그 중앙위에 상정된 안건이 부결되는 일은 없다. 상정된 인준 안이 통과 안 될 일도 없다. 질문은 많지만 토론은 충분하지 않다.
5차 당 대회에서 창당이래 최초로 당내경선을 통해 신석준후보가 당선되었다. 당시 그 선본은 양명철당원의 집에서 정책을 만들었다. 대표와 강령, 당헌을 세트로 묶어 경선을 치렀다. 당시 우리의 성실한 정책통 최광은이 강령과 당헌을 준비했고 집행부와 의결부의 분리를 통해 당원들을 대변하는 중앙위원들이 모인 중앙위원회가 집행단위의 일을 심사, 검토, 견제하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상임위원회도 두었다.
신석준-권태훈이 러닝메이트 대표와 사무총장으로 당선되어 집행부를 조각할 때 나는 중앙위 의장 후보로 출마했다. 광은이는 정책위원장, 양명철은 비서실장을 맡았다. 여의도 당사를 떠나 청파동 골목 안쪽으로 이사했다. 시정이 대근이 상훈이가 중앙당에서 같이 일했다. 나는 의장으로서 집행부가 잘하는 것은 적극 돕고 잘못하는 것이 발견되면 점검하여 보완요청하고 토론 결과에 따라 부결도 할 생각이었다. 새롭게 만들어진 중앙위 의장이라는 일을 내가 맡음으로서 경선승리의 책임도 함께 지고자 했다.
대표와 상집, 의장과 상임위
당시 중앙위원들은 1대 중앙위 의장이 어떻게 회의를 진행했는지 기억할 것이다. 중앙위원들 가운데 지역과 나이와 부문을 고려하여 상임위원들을 선출했다. 당시 대표와 총장은 중앙위의장에게 매우 친절했다. 밥 사주고 놀아주고 주요사업에 대해 핵심을 브리핑 해주었다. 중집이 열리면 꼭 데려가서 중집의 생각과 안건에 대해 파악하게 했다.
상임위는 주로 중집과 중앙당부서와 각 위원회가 준비하는 안건지를 미리 제출하게 해서 검토하고 미진한 부분을 보완하라고 요청했다. 안건상정은 중집이 아니라 상임위가 하는 것이므로 만약 상집과 상임위가 정치적으로 대결한다면 안건상정을 놓고 정치투쟁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그 당시는 평화로운 시기였고 대표와 총장과 의장이 아주 친했다. 임기를 마치고 나는 재선에 나서지 않고 물러났고 백인성 2대 중앙위 의장이 선출되었다.
중앙위에서의 정치
세월이 한참 흘러 존경하는 김철수선배가 입당하고서 사회당에 본격적인 당내 정치가 등장했다. 한쪽이 조직을 형성하면 대립하는 이들도 조직적으로 대응하게 된다. 당내 긴장감이 확 돈다. 대선 직후 금민대표가 사임하고 중앙위가 열렸는데 어떤 진보혁신위원회(?) 상정안을 놓고 일부 중앙위원들은 조직적으로 찬성표를 던졌고 일부는 조직적으로 반대표를 던졌고 일부는 그런 배경을 모른 채 안건내용을 놓고 소신투표를 했다. 그 투표가 각자의 인생을 크게 바꿔놓기도 했다.
그게 정치 아닌가. 그게 조직 아닌가. 실력 있고 권력의지 있고 성실한 리더들이 자기와 같이 갈 동지들을 조직하고 규합하고 작전을 짜고 필요한 안건을 통과시키고 필요한 기구를 만들어서 장악하고 그렇게 중앙위원회를 점령하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가. 신석준 의장 시절인데 중앙위원회마다 조직과 조직의 표 대결이 진행됐다. 중간에 있는 중앙위원들을 한 명이라도 더 자기 쪽으로 표결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아주 오래전 중앙위원이 백여 명 되던 시절에 훗날 독립좌파로 명명될 이들과 그에 동조하지 않는 중앙위원들이 표 대결을 한 적이 있지만 너무 복잡하니 4년 전 이야기로만 국한하자.
중앙위원들이 안건을 놓고 토론한다. 진보혁신위를 만들 것인가. 위원장을 누구로 할 것인가. 평가위원회를 만들 것인가. 활동기간은 언제까지 인가. 총선을 앞두고 당 대회는 언제 열 것인가. 상대방의 전략을 모른 채 일단 반대를 조직하기도 한다. 쉬는 시간에 삼삼오오 모여 의논하고 막후에서 타협안을 논하기도 한다. 그렇게 당권접수와 사수를 위한 내부 정치가 펼쳐졌다.
나는 당대표 후보로 나서고 나서 모든 중앙위에 참관하여 중앙위원들의 표결에 영향을 미치고자 선동했다. 내 선본에 합류한 중앙위원들로 하여금 우리에게 가장 유리한 안건을 통과시키고 불리한 안건을 부결시키고 당 대회 날짜를 정하도록 발언하게 하고 표결하게 했다. 권유신, 박광욱, 이형진의 활약으로 여러 중앙위에서 많은 것들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결정되었다. 한번은 중앙위 때 찬성발언해서 분위기를 정리해 달라고 유신이에게 쪽지를 전달한 적도 있다.
이렇게 당내에 다른 정치적 견해, 그룹, 분파가 존재하고 당권경쟁을 하는 경우에 중앙위원회에서 유리한 결정을 내어야 하므로 평소 각 중앙위원들을 자기편으로 조직하는 일이 이루어진다. 또한 상임위원회를 장악해야 한다. 의장이 아프거나 잠시 자리를 비울 때 상임위원 가운데 한 명이 의장을 대신해 회의를 주재한다.
전쟁과 평화, 긴장과 안일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오면 당내 정치도 사그라진다. 경선 없이 옹립된 대표와 그 대표가 조각한 중앙당과 각종 특별위원회와 상집이 당을 운영한다. 중앙위에 안건 상정하면 다 상정되고 특별한 토론 없이 질문 몇 개 받고 통과된다. 상임위는 특별히 할 일이 없고 중집이 요청한 날에 중앙위를 열겠다고 공고한다. 이형진 의장 시절에 엄균용 의장 시절에 상임위를 열어 안건을 검토하고 보완을 요청하고 되돌려 보낸 적이 있는가. 집행단위의 당 운영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여 중앙위에서 견제를 위한 토론을 하거나 질타한 적이 있는가. 없는 것을 찾아내 트집 잡으라는 게 아니라, 집행과 의결이 분리된 정신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최근의 사태를 보라. 진보신당과의 통합을 준비하고 협의하고 추진하는 모든 기구와 위원회와 인선을 결국 중앙위가 다 처리한 것이다. 중앙위원들은 집행단위나 특별기구의 활동을 보고 받을 권리가 있고 판단할 근거를 위해 정보제공을 요청할 수 있다. 지역과 부문으로 돌아가 당원들에게 설명할 수 있도록 설득할 수 있도록 논리와 명분과 방도를 제시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상정된 안건이 불충분하면 그 자리에서 설명과 질문과 토론을 통해 중앙위의 생각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당론이 될 것이다.
가령 진보신당 당명으로 총선 전 통합하자는 금민위원장의 구두설명을 듣고 중앙위원회는 더 토론을 했어야 했다!
그 자리에서 중앙위원 자신들이 이해되었거나 당 지도부를 신뢰한다고 해서 그렇게 넘어갈 일이 아니다. 그 이해와 신뢰가 당원들에게 폭넓게 확산될 수 있을지, 혹시 반발하여 탈당할 당원들이 속출하지 않을지, 새로운 당명으로 당대당 통합을 원한다는 여론이 크게 일어날지 등등 논의할 게 너무 많은 안건이었다. 잠정합의문과 부속합의서의 내용은 중앙위에서 공유되지 않았는데 금민위원장은 필요한 만큼 적당한 형식으로 보고한 것이지만 중앙위원들은 더 정확한 보고를 요구했어야 했다. 중앙위 의장은 잘 판단하여 이 정도 토론하면 되겠구나 싶을 때까지 중앙위원들의 토론을 유도해야 한다. 그런 중요한 안건을 간단히 논의하고 표결로 넘겨버릴 경우 나중에 크게 후회하게 된다.
직접 책임과 간접 책임
이번 통합작전에서 당 지도부와 미드필더들에게 직접적 책임이 있다면 의결부엔 간접적 책임이 있다. 집행부는 자신들이 필요한 안건을 중앙위에서 통과하므로 그 책임을 공유시킨다. 중앙위원들은 그것을 통과시켰고 당원들에게 알리고 설득할 책임이 생긴다. 결국 당 지도부가 어떤 잘못을 했을 경우 당원들도 그 책임을 공유하게 된다. 중앙위원들에게 정보가 제공되지 않으면 당원들에게도 전달되지 않는다. 당원들은 정보도 없이 토론되는 것도 못 보고 그저 책임을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중앙위원을 잘 뽑아야 한다.
중앙위원회 회의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 찬반토론을 통해 논리를 개발하고 명분을 이해하고 비판을 통해 보완할 것을 생각하고 당내에 그 당론을 어떻게 안착 시킬 것인가가 굉장히 중요하다. 그걸 잘하는 당은 지도부가 당원들의 참여와 지지를 받으며 정치를 하게 되지만 그걸 못하면 지금처럼 따로국밥이 된다. 중앙위에서 안일하게 처리해서 이런 고통스런 당내 진통이 더 커진 건 아닐까 반성해보라.
후임 의장들과 모든 전현직 중앙위원 동지들에게
사회당 중앙위원 동지들은 앞으로 지역에서 시나 구의 의원이 될 수도 있고 국회의원이 될 수도 있고 장관이 될 수도 있다. 조그마한 당에서 당 운영을 어떻게 할 것인가, 집행과 의결의 균형과 견제와 협력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대표와 당원 사이의 소통은 어떻게 이어지는가. 이 모든 게 연습인 것이다. 청년진보당-사회당에서 경험한 것과 시행착오를 기억하여 진보신당과 좌파당에서는 더 잘해야 한다.
초대 중앙위 의장으로서 백인성, 신석준, 이형진, 엄균용 후임 의장들에게 그 동안 당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것에 대해 고맙고 진심으로 수고했다는 인사를 전한다. 중앙위 의장을 해본 경험은 앞으로 좌파당을 건설 할 때 각자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울러 13년 동안 중앙위원을 했던 동지들도 고생 많았다. 동지들의 발언과 눈물을 기억하고 있다. 총명한 눈빛과 절절한 호소를 기억하고 있다. 멋진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13년 동안 당비만 꼬박꼬박 내고 단 한번도 중앙위원이 된 적이 없거나 구경을 못해본 당원들도 많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진보신당은 간선제이기에 현재 사회당 당원들은 당 대회에서 투표권이 없다. 중집은 전국위원이 되고 중앙위원은 대의원이 되겠지만 총선이 지나면 다시 선출하게 될 것이다. 각 지역과 부문에서 경선을 통해 선출될 것이다. 그러므로 실력을 키우고 당원들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대의원이 될 수 없으며 쉽게 되어서도 안 된다. 자신의 실력과 노력으로 선출될 그 대의원들과 전국위원들이 제2창당을 주도할 것이고 좌파당의 정체성을 좌우할 것이다. 사명감을 갖고 학습하고 조직하고 투쟁하기를. 그 전쟁에서 살아남아 좌파당의 당당한 일원이 되기를 기원한다.
작자의 변 : 사회당의 나날이 일주일도 남지 않았습니다. 좌파본색으로 소개하고 싶은 일화들이 많은데 복기하느라 시청률이 떨어졌습니다. 지금 해야 할 일이니 한 것입니다. 사회당 홈페이지가 언제까지 유지될지 모르겠군요. 다음부터는 짧게 유쾌하게 풍자와 해학으로 재밌는 글을 써보겠습니다. 저는 술 보다 책을 좋아하는데 자꾸 술 먹자고 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글쓸 시간이 없습니다. 원불교 회관에서 봅시다. 대형 선풍기가 돌아가던 청년진보당 창당발기인대회를 열었던 그곳에서.
청수 오창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