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들었던 답변중에 가장 좋았던 점 감사드립니다. 많이 배웁니다.

 

예, 맞습니다. 역사적으로 좌파의 탄생은 자본주의에 대한 반발에서 탄생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며 사민주의와 사회주의 모두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고, 사민주의가 자본주의 모순의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사회주의로 가는 수단일 뿐이라는 것까지, 틀린 말이 없네요.

 대안에 대해서도 국립대통합네트워크는 꽤 흥미롭네요. 학벌이나 문화적 아비투스를 통한 계급 재생산적 구조를 끊는 방법에 대해서 많이 고민해보고 있는데, 괜찮은 접근인 것 같습니다.

 

 1.  으음, 나보고 항상 자본론을 읽어보라고 하는 사람이 많은데, 안읽은 거로 보이나 봅니다. 죄송해라.

 노동자는 자신의 임금  이상의 교환가치를 지닌 상품을 생산하는데, 그 생산물은 노동자의 것이 되지 못하고, 결국 상품의 교환가치와 임금의 차액이라는 부분에서 '이윤'이 발생하고 결국 이윤이란 생산수단을 가진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함으로써 생긴다는 건데.

 

 

2.  사실 사회주의 모델이 이상적으로 적립된다면야 사상적 당위성은 제일이겠지요.

우선,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궁극적 해결 방법이 되는 이유는 생산수단의 사유화 금지, 그러니까 국가 통제하에 두거나 필요한 사람에게 분배하는 건데, 따라서 난 이걸 사민주의와 사회주의를 나누는 기준으로 보겠습니다.

 뭔가 이상한 비유 하나 들겠습니다. y=1/x에서 x가 무한대인 극한을 취하면, 그러니까 x의 값이 무한히 커지면 y는 0이 될수는 없지만 0에 극히 가깝게 수렴하게 됩니다. 그걸 0으로 수렴한다고 하지요.

 같은 이치입니다.

 

 첫번째, 자본주의 체제는 앞서 말했듯이 일상, 그러니까 이미 관습화 되어 굳어져 가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이외의 다른 체제를 상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면 알 수 있지요. 세계경제의 더블딥과 신자유주의의 폐단으로 자본주의적 모순에 대한 비판이 강화되고 있으나,  사회주의를 향한 부르짖음은 솔직히 몹시 작을 뿐입니다. 사유재산의 개념과 이윤추구가 몇십대를 거쳐 일상화되어버린 사람들의 사상적 관성은 대단할 것이며, 공감을 얻기란 힘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민주의가 사회주의로 가는 수단이 될 수 있는 거겠지요? 이렇게 사상적 관성이 대단한 상태에서, 이 나라만 사회주의화 된다면 다른 나라의 노동자들을 돌볼 수 없는 건 둘째치고라도, 자신들의 상품을 팔기 위해 모든 나라에서 체제적 압박이 심할 것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사유재산의 철폐와 생산수단의 국유화는 전지구적으로 일어나야 할 일인데, 과연 전지구적으로 동시에 인간의 소외와 노동의 소외를 극복할 수 있을라나. 왠만큼 많은 나라가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체제적 압박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심할텐데.

 

두번째, 음, 가까운 이야기로 무상의료 하나만 합시다. 무상의료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무상의료가 실시될경우 일반 사람들이 의료자원을 과잉사용,낭비 할 것이라 말하며, 재원 확충이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공용목초지의 비극 이론인 거지요.이건 무상의료 뿐만 아니라, 사유재산 폐지와 생산수단의 국가통제하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가장 큰 결점입니다. 자본주의의 선악은 제쳐두고라도 자본주의 자체가 발생했다는 건, 그리고 자본주의를 해석한 마르크스의 전제는(마르크스의 전제이자 모든 경제학자의 전제) 사람은 일반적으로 어떤 이윤을 얻기 위해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공공재가 되었을 때 그것의 낭비나 공용목초지의 비극 이론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합니다. 그게 전제되지 않고는, 동독의  역사를 되풀이 하는 거 아닙니까? 솔직히, 사람들의 의식변화로 이를 이룬다는 것은 모든사람들이 다 착해져 서로를 돕는다는 얘기만큼이나 허무맹랑하며, 만약 어떠한 제한을 둔다고 하더라도 상황을 판단한 제한의 기준이 과연 원칙을 지키면서도 유연할 지 모르겠습니다.

 

 세번째 공공재의 낭비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사유재산의 철폐 시 개인이 제공한 노동가치에 대한 보상은?  과연 자본주의와는 달리 개인의 노동가치 만큼의 가치를 노동자에게 줄 수 있을까요? 농업사회에서 잉여가치가 생긴 이후로 계급이란게 생겼습니다. 사회에서 생긴 잉여가치가 일부도 '내 것'이 되지 않고 모두가 '우리 것'이 되는 상황에서 모두가 필요한 만큼만 가져갈 지도 의문이거니와, 필요한 만큼을 생산하는 효용성이 있을란지 모르겠네요.

 

 네번째 모든 자원을 분배하는 집단이, 누구에게 얼만큼이 필요하니 얼만큼 줘야겠다라는 원칙을 마련할 수 있을 지 의문입니다. 원칙이 없으면(원칙이 있다해도 지켜지지 않으면) 결국 서로 삥땅치기 밖에 되지 않는 것이고 결국 생산자와 분배자라는 또다른 계급체계가 만들어질 뿐입니다.

 

 

 내 말은 이겁니다. x가 무한히 커지면 y는 0에 극히 가까히 가도 0이 되지 못하듯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사민주의를 수단으로 삼아 사회주의에 점점 가까워지더라도 사회주의와 사민주의간의 근본적 차이이자 사회주의가 자본주의 극복의 궁극적 체제가 되는 이유인 사유재산의 철폐와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이룰 수 없을 것이라는 겁니다.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의 궁극적 체제이겠지만, 앞서 말한 공공재의 낭비와 개인의 노동가치에 대한 보상, 그리고 정부실패의 위험성, 새로운 계급체계의 출현 가능성 등의 다양한 한계를 안고 있는 사회주의 자체는 실현될 수 없다고 봅니다. 앞서 말한 한계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해결책 자체가 내포한 모순이기 때문에 또다른 사상적 상상력을 발휘해 새로운 모델이 나오지 않는다면 가능성에는 부정적인 입장입니다. 사회주의가 궁극적 극복이 되는 이유가 발목을 잡는 한계가 되어버리는 거지요. 결국 우리는 사민주의를 통해서 자본주의 궁극적 극복, 그러니까 사회주의라는 지향점을 향해서 달려가겠지만 그 도착점에는, 결코 다다를 수 없을 꺼라는 겁니다. y값이 0을 향해 달려가지만 0이 되지 않는 것 처럼요. 사회주의는 결국 민중의 각성과 혁명이 있어야 하는건데, 사민주의는 법과 제도로 이루어 나갈 수 있는거 아닙니까. 사회주의는 궁극적 지향점일지는 모르곘으나, 완벽하지도 않으며, 스스로가 가진 한계 때문에 이뤄낼 수도 없는 고로, 결국 아무리 뛰어도 최종적으로 다다른 곳은 사민주의일 것이란 거지요.(다다른 곳이라는 말이 이상하네요. 진행하는 정지니까.)

 

그래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바는 이겁니다. 복지와 재교육(국립대통합네트워크처럼 학벌을 통한 계급 재생산적 구조와 아비투스를 타파하거나 새로운 사회적 기회를 제공하는 일체를 말합니다.) 을 중심으로 한 사민주의는 사유재산과 자본, 자본가의 이윤 추구를 위한 노동을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더라도 복지와 사회법이라는 새로운 도구를 이용해서 사회적 모순을 최소화 시킬 수 있으며, 법과 제도를 이용한 이윤의 강제적 분배를 이루어 낼 수도 있습니다. 사회주의의 당위성을 근본으로 하면서도 자본주의의 효율성을 이용할 수도 있고요. 물론 초국적 기업처럼 자본의 힘이 통제불가능한 범위를 넘지 않게 이리 저리 제한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거지요. 차피 앞서 말한 것처럼, 사회주의가 그 자체의 의의를 가지고 가면서도 완성된 모델이 되지 못할 바에야(왜 안되는지 다시한번 설명하자면, 사회주의를 가치있게 만드는, 사유재산 철폐와 생산수단의 공공화가 사회주의 자체의 한계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지요.) 사민주의의 사상적 힘을 발전시키고 긍정시키는 데 힘을 모으는게 낫지 않나 하는 겁니다.  나는 그것이 퓨쳐레프트의 방향이 될거라고 믿습니다.

 

 

모든 진보정당은 이 자본주의 사회를 바꾸어 사회주의를 지향합니다. 단지 이 사회주의로의 이행에 있어서 사민주의가 수단이 되기도 하는 건 맞습니다, 인정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제가 한 말이 저것에서 벗어나진 않는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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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과 차악 개념으로 받아들이는건 어폐가 있겠네요. 그 자체로 모순을 내포한 사회주의가 최선이 될까요.

 

 

 

 아, 이건 그냥 질문. 일부국가만 사회주의화 되었다고 가정할때 사실 생산수단을 국유화하고 사유재산을 부정하면, 상품가치 없이 교환가치만 가진 화폐라는 것은 그 사회 내에서 존재의의가 없는데, 중동에서 석유를 수입하거나 어쨌든 각종 필수적인 자원들을 조달하기 위해서 필요한 무역은 국가가 중개하는 건가요?